모노&다이얼/산자와 죽은자
2004/09/28 17:54
[이 좋은 책을 나에게 소개하고 새 생명의 힘을 불어 넣어준 재혁부부에게 감사드림]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 - C.S. 루이스 1. 인간에게는 도덕률이 있다. 자연의 법칙은 자연이 늘 실제로 하는 일에 대한 눈에 보이는 법칙이지만 사람에 대한 자연의 법칙은 늘 실제하는 행동에 대한 관찰이 아니라, 실제하지않으면서도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압박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도덕적 힘을 말한다. 자연은 그 법칙을 따르는데 예외가 없다. 중력법칙에 따라 돌은 위로 던지면 아래로 떨어지며 실제 모든 돌은 그 법칙을 따른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인간이든지 마땅히 해야할 도덕률(인간본성의 법칙)을 느끼고 있지만 사실 단 한명의 인간도 이 법칙을 완전하게 따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도덕률이라 일컬어지는 일정한 방향으로 행동해야한다는 기묘한 생각과 압박을 받고 있다. 인간은 이 도덕률 아래에 있으며 그 도덕률이란 인간이 만들어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잊어버릴 수 없으며 마땅히 따라야 한다고 스스로를 압박하는 실재적 법칙이다. 이 옳고그름을 판단하는 인간본성의 법칙은 관습이나 집단본능,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마치 구구단처럼, 배워야하면서도 애초부터 존재하는 실재적인 기준이며 법칙이다. 2. 우주에는 그 도덕률을 만들어 우리의 정신안에 둔 존재가 있다. 우주은 왜 존재하는가? 우주가 지금처럼 지속되고 있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주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우주가 아무 이유없이 그저 우연히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힘이 배후에 있는지 여부를 알고자 할 때 그 실마리를 관찰가능한 사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건축가가 벽이나 계단으로 모습을 나타낼 수 없듯이 말이다. 오직, 외부의 관찰로는 알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인 인간의 내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 배후의 존재는 우리를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영향력이나 지배력에 의해서 존재를 드러낸다. 루이스가 자신이라는 내적인 봉투를 열어보았을 때 발견한 것은 "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며 어떤 법칙 아래 있는 존재"라는 사실, 즉 "내가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원하는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생각은 - 우주를 지휘하는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 무언가는 내안에서 옳은 일을 하도록 재촉하고 그릇된 일에는 책임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만드는 하나의 법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 우주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 : 물질과 공간은 우연히 생긴것으로 늘 존재해 왔지만 그 존재 이유는 알 수 없다. 많은 일련의 우연으로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만들어졌다. * 우주에 대한 종교적 관점 : 우주의 배후에는 그 어떤 것보다 정신(mind)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으며 그 무언가는 지각과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특정한 것을 더 선호하는 존재이다. 그 무언가는 부분족으로는 우리가 모르는 목적 , 또 부분적으로는 어쨓든 자신과 닮은 존재를 만들려는 목적을 위해 이 우주를 만들어 냈다. * 우주에 대한 생명력의 철학 : 종교적 관점과 유물론의 중간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지구위의 생명체를 가장 하등한 형태에서 인간으로 진화시킨 작은 변화들은 우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생명력의 분투 혹은 생명자체의 목적성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생명력이 분투하거나 목적성을 가졌다는 것은 생명력이 정신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고 그 생명이 완전해지도록 이끄는 정신은 바로 하나님이라며 그들의 오류를 지적한다. 루이스는 그들의 "생명력"을 길들여진 하나님으로 설명하였다. 이는 종교의 감동을 다 누리면서도 댓가는 하나도 치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그동안 생명력의 철학 편에 서 있었다고 해야할 것 같다. 3. 절대선은 최고의 공포 우리는 우주배후에 있는 존재가 옳은 행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기에 그 배후의 존재가 선한 존재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절대선은 어떤 행동이라도 다 받아주는 상냥하고 동정심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도덕률은 바늘끝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이 냉혹합니다. 그 배후의 존재가 도덕률과 같은 존재라면 결코 상냥한 분일 수 없다. 그 배후의 존재가 옳지않은 행동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결코 선한 존재일 수 없다. 그러기에 절대선이 존재한다면 우리의 행동 대부분을 미워한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절대선이 우주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희망이 없다. 그러나 절대선이 있기에 우리는 매일 그 절대선의 미움을 받아야한다. 이는 딜레마이자 끔직한 곤경이다. 그 배후의 존재는 유일한 위안인 동시에 최고의 공포이다. 4. 기독교는 낭패감에서 출발하는 종교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린 먼저 도덕률이란 사실이 정말로 존재하고 그 법칙의 배후에는 어떤 힘이 있고 여러분이 그 법을 어김으로써 그 힘과 잘못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을 깨닫기전에는 정말이지 기독교는 아무런 말도 우리에게 할 수 없다. 자신이 절대선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저질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 자신에게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독교가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다. 자신이 스스로 병들었다는 것을 알아야만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자신이 아무런 가망이 없는 처지에 있다는 점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그리스도인들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긷고교는 낭패감에서 풀발하는 종교로서 그 낭패감을 먼저 겪지않는 한 아무리 위안을 얻으려고 노력한 들 소용이 없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