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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다이얼/세상에말하기 2008/04/30 22:19

얼마 전에 남중국에 다녀오는 길에 광저우 공항 안에서 아래와 같은 대형광고를 보았다.

한국에도 소개가 된 영화인 집결호(집결신호를 알리는 호각소리)의 주인공을 모델로 삼은 디지털카메라 광고였다. 난 그 광고를 한참이나 바라 보았다. 중일전쟁을 아픔을 그린 영화와 삼성카메라를 고스란히 모방한 "애국" 이란 브랜드의 중국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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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호 영화를 배경으로 크게 적혀진 문구는 영화속에서는 결국 울리지 않았던 집결호의 호각소리가 이제 마침내 울려 퍼지고 위대한 민족정신을 중국인 스스로 일으켜 세운다는 뜻이다. 그 광고의 이미지와 카피들이 티베트 문제와 성화봉송을 대처하는 중국인들의 행동과 겹치면서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그 넓은 광저우 공항에는 한국의 대표브랜드인 삼성의 광고가 더 화려하고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이번에 남중국에서 만난 중국사람들은  대부분 삼성의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고 신형 현대차를 구입한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리고 굳세어라 금순아를 비롯한 한국드라마를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한국상품이 서양상품에 비해 디자인과 정서적인 면에서 더 가깝고 정이 간다고 말하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삼성의 직원이 아니면서도 한국인으로서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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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아니 그들에게 민족이란 무엇일까?
나는 동행한 조선족 직원에게 저 광고의 민족정신은 어느 민족을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 한족이겠죠..."

우리는 짱꼴라와 까오리빵즈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서로 상대방을 조롱하는 놀이를 하였다. 같은 민족이면서 각기 다른 국가에 소속된 사람들의 놀이...

그것보다 나는 근래들어 맹위를 떨치는 중화민족주의의 실체가 대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저렇게 광고안에서도 "민족정신 자강불식" 이라는 강렬한 카피를 사용하는 이 사람들이 꿈꾸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걸 바라보는 소수민족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민족의식은 사실 비난할 것이 못 된다. 어느 나라나 애국심이 있고 그런 애국심이 나라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힘이 된다. 그런데 지금 우려되는 중화의 대국의식은 문화와 철학과 경제가 균형을 이룬 대국의식이 아니라 맹목적인 집단주의라는 것이다. 미국과 전쟁을 하면 중국은 자신들이 이긴다고 생각한다. 2억정도의 인민을 미국으로 피난보내거나 항복하게 만들면 미국은 포로들의 식량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전쟁을 포기한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경제력에서도 상당한 힘을 비축한 중국은 13억이라는 인구를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려 하고있다. 근세들어 역사의 굴곡에서 수동적인 삶을 긍정하며 아큐정전의 아큐처럼 살아야했던 중국이 이제 세상을 향하여 본격적인 중화혁명을 꿈꾸고 있다. 아큐의 습성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反아큐적인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아큐의 비굴했던 자기합리화의 승리가 아닌 중화민족의 대국굴기 승리를 위하여 13억의 아큐들이 서방을 향해 반기를 든 것이다.

이번에 성화수호대를 보면 또 다른 모습의 홍위병들이 의기양양하게 중국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무엇을 위해서? 라고 물으면 그들은 대답은 오직 하나의 중국을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하나의 중국... 무한확장되는 중화의 개념은 대체 무엇인가? 중화는 무엇이고 56개 민족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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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신 자강불식의 광고를 보면서 중국인들이 자체적으로 많은 갈등을 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정신의 개념 설정은 중국인들에게 큰 과제가 아닌가 싶다. 그들이 지금 홍위병처럼 나서는 이유는 이런 내부적인 고민을 중화민족주의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일종의 아큐식의 현실도피로 보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아니 아큐를 넘어서 성당시대를 21세기에 구현하고픈 욕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당시대의 재구현은 그렇게 쉽게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은 항상 변하고 21세기 성당시대는 이전보다 더 짧게 끝날 것이다.중국이 진정한 대국으로 일어서느냐 아니면 이대로 몰락하느냐는 중국인들이 중화민족주의를 어떻게 정의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올핌픽이 끝나면 중국은 집단적인 허무에 휩쌓일 것이다. 사실 그 집단적인 허무가 무서운 것이다.

나는 이 고민은 중국인들이 스스로 풀어야 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스스로 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서방에서 너무 앞서가면 갈등만 쌓이고 중국인들은 더욱 마음의 빗장을 잠글 것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나서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문제를 우리가 풀었다. 중국인들도 나름대로의 진화를 밟고 있다. 인위적인 간섭은 문제를 꼬이게 만들 뿐이다.

혁명은 옆에서 부추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티베트는 티베트고 중국은 중국이고 한국은 한국이다. 티베트 때문에 우리 스스로 힘들게 할 필요가 없다. 중국은 친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도 친구가 필요하다. 모든 것에 완벽한 친구가 없듯이 모든 것에 완벽한 국가는 없다. 얽히고 섥힌 역사의 타래들은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다. 친구라면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현명하다면, 허허 웃어 넘길 수 있어야 한다. 어쩌란 말이냐... 영웅은 난세에 나는 법이다. 우리가 중화민족주의를 도와준다고 문제가 딱히 될 것이 없다. 우리에게는 한민족의 정신이 있다. 오히려 다민족시대라는 명분으로 그것을 부정하려는 사람들이 문제일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