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다이얼/세상에말하기
2009/11/05 19:29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군 복무와 혈서 관련 내용은 소상히 밝혀져야 한다.
그것이 정치적인 폭발력이 있든 없든 상관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시절의 역사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역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1932년에 세워진 만주국은 일본이 만주를 지배하기 위하여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를 앞세워 만든 허수아비 국가로 알려졌다. 당시 만주국은 국제연맹의 인정도 받지 못했으며 중국에서는 위(僞)만주국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1930년대의 만주는 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된 격동의 중심지로서 만주국을 단순히 일본의 괴뢰국으로만 폄하하는 것으로는 역사를 제대로 정리할 수 없다. 만주지역은 청의 봉금정책으로 개발이 제한되다가 19세기 말부터 일제가 패망하고 중국공산당이 중국을 건국하는 1945년경까지 한족과 만주족, 조선인, 일본인, 몽골인, 러시아인들이 함께 거주한 국제적이고 다원적인 성격의 지역이었다. 동시에 그만큼 논쟁적인 역사가 진행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주국에 관해서는 역사적으로 큰 주목을 받거나 활발한 연구가 진행 된 일이 드물다. 만주, 즉 현재의 중국 동북3성 지역은 우리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북방민족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를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어렵다. 북방민족들의 마지막 국가인 만주국의 성립과정과 의미에 대해서는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박정희의 개인 역사를 북방민족의 역사와 연계하여 연구하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박정희 혈서 문제를 너무 현실적으로 정치적인 당리당략으로만 접근한다면 우리는 역사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역사분석과 활용이 필요하다. 역사의 대부분은 다시 쓰는 자들의 몫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묵묵히 밀어부치는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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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지역에서 발행되던 일본어 신문인『만주신문』기사에 의하면 박 전대통령은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 중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하였으나 연령 초과로 일차 탈락하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지원 서류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와 채용을 간곡히 호소하는 내용의 편지를 동봉하여 1939년 재차 응모한 것으로 나타난다. 편지 내용도 일사봉공(一死奉公),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 등 확고한 신념을 담고 있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만주신문>은 이어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며 박 전 대통령의 두 번째 만주국 군관 지원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세 번째 시도 끝에 1940년 4월 신경군관학교 예과과정에 입학하여 군사교육을 받고 1942년 10월 성적 우수자로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3학년에 편입하는 등 '꿈'을 이룬다.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만주신문』 1939.3.31. 7면)
박전대통령은 세 차례의 시도 끝에 1940년 4월 신경군관학교 예과과정에 입학하여 군사교육을 받고 1942년 3월 우등생으로 졸업하면서 만주국 황제 푸이(溥儀)가 하사하는 금장시계를 은사상(恩賜賞)으로 받았다. 1942년 10월 성적 우수자로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 3학년에 편입했고 1944년 4월 일본육사 제57기와 함께 졸업했다. 1944년 12월 일본군 소위로 예비역으로 편입됨과 동시에 만주국군 보병소위로 임관하였으며, 보병 8단 단장의 부관실에 부임해 작전참모 역할을 하는 을종(乙種) 부관 겸 부대의 단기(團旗)를 책임지는 기수로 근무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후 1944년 12월 일본군 예비역 소위로 편입, 일제 패망 직전까지 만주군 중위로 활동했다.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만주신문』 1939.3.31.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