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다이얼/산자와 죽은자
2007/10/26 13:00
(부제)목회자를 다시 세우자-1
이제까지 서양달력에 일요일이 왜 있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나에게 있어 일요일이란 학생시절에는 학교에 안가서 좋고 나이들어서는 직장에 안가고 푹쉬는 좋은 날이었습니다. 신앙을 가진 다음부터 일요일은 주일이란 이름으로 교회에 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일요일에 대해서는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서양의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안식일의 개념, 즉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칠일째 쉬셨기에 피조물인 우리들도 칠일째는 쉬어야 한다는 단순한 개념만 주어듣고 있었습니다.
2주 전 주일날엔 고향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젊은 부목사가 설교를 하였는데, 일요일에 돈되는 사업을 중지하고 주일예배를 드리게 되는 어떤 초신자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신자는 자기의 직원들도 주일에 함께 예배를 드리는 기쁨을 나누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도 그 초신자를 본받아 일요일에는 일하지 말고 교회에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순간, 목사님도 지금 일하고 있잖아요 라고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설교의 주제가 예배의 기쁨이 아니고 전도활동에 촛점을 맞춘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일요일엔 아무 것도 하지않고 편히 쉬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는 일에 열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에서 일요일에 일하지 않는 것을 신앙의 지표로 삼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안식일이 언제냐를 가지고 교파간에 의견이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예배를 꼭 주일(일요일)에 교회에 나와서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녀에게 일요일엔 공부도 하지말라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켜야할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에 다 쉬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발전소가 멈추고 공장이 멈추고 통신시스템이 멈추고 교통수단이 멈추고 병원이 멈추고 경찰활동이 멈추고 수도가 멈추고 모든 공급이 멈추면, 아무도 쉴 수도 없고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릴 수도 없습니다. 일요일 때문에 멈춰버린 세상을 다시 돌리려면 엄청난 수고가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신자들이 주일에 일하는 사람들을 불신자로 매도하는 그 시간에 그들은 세상을 돌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요일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은 돌아가고 예배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들에게 일요일에는 쉬어야한다고 설교하는 목사님도 (엄연한 직업인) 목회사업을 일요일에 쉬지않습니다. 일요일에 꼭 쉬어야 하는 것이 지고의 율법이라면 성경에서 특별히 예외라고 기록이 되지않은 이상에야 주일날의 목회일도 하나님의 계율을 어기는 것이 되는 것 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옛날 우리나라에 휴일제도가 있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시간을 내어 검색해보니 조선시대 공직사회에는 근무시간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정기적인 휴일은 없었고 개인별로 대충 알아서 적당한 핑계를 찾아 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일요일에 쉬는 건 근세이후 서양달력과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부터였겠지요.
그러면 서양에서는 어떻게 해서 일요일이 생겼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초기기독교는 일요일은 없었고 유대인들은 지금의 토요일에 해당하는 안식일을 지켜왔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사후, 유대인의 반란과 그에 대한 로마의 진압과정을 통하여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기독교의 박해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기독교를 믿는 로마인들이 오히려 늘어나면서 로마는 딜레마에 빠져버립니다. 기독교박해를 계속하면 유대인이 아니라 자기시민들을 대거 죽여야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지요.
기독교인도 유대인과의 구별을 위하여 유대인의 안식일과 습관을 버리고 로마의 태양신과의 타협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로마가 점차 기독교화되고 기독교도 로마화되면서 태양신의 전통이 뒤섞여서 태양신을 기리는 날인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관습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합니다. 니케아종교회의에서 모든 종교의 자유가 선포되고 일요일에 노동이 금지가 되면서 기독교의 새로운 관습들이 자리를 잡아갑니다. 그러면서 일요일은 안식일 다음날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일을 기리는 날로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
이런 역사를 살펴볼 때 일요일 휴식과 예배는 성경에 기록된 교리가 아니라 인간이 사회적 종교적 편의를 위해, 종교지도자들이 만든 규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일요일이 없다면 신앙적으로 집회를 가지기가 무척 어렵고 일반대중에 대한 종교적 학습과 통제도 어려웠겠지요.
오늘날의 전도활동이란 일요일에 집에서 쉬는 사람들을 교회에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요일에 쉬는 것이 하나님의 계율에 충실한 것이라는 주장을 통하여 일요일에 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묘한 죄의식의 압박에 빠지게 만듭니다. 오늘날 주일에 교회에 가는 것이 마치 신앙부에 출석도장을 찍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너 예수믿냐가 아니라 너 교회다니냐가 일반적인 질문입니다.
일요일에는 일을 하지않고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려야하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라는 것은 일종의 편견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따로 시간을 내어 집회를 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기적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그의 제자와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하나님을 사유하는 시간이요 일상의 행동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스러운 예배였습니다. 교회도 따로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 한명 한명이 교회 그 자체였습니다.
기도와 예배는 특별한 날이 아니라 늘 매순간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일주일동안 묵혀두었던 세상때를 벗기러 주일날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는 신자들의 세상때를 밀어주는 때밀이가 아닙니다. 자신의 영혼의 때는 자신이 스스로 문질러야 벗겨집니다. 예배와 경건은 다른 권위가 대신해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있어 장소와 시간에 얽매여서는 안됩니다. 필요하다면 일요일에도 열심히 일해야합니다. 열심히 벌고 일해서 어려운 사람들도 돕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 날 한국의 교회는 여러가지 문제로 깊은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모든 문제의 발단은 교회를 이끄는 리더 즉 목회자에게 있다고 봅니다. 한국기독교는 목회자가 살아야 진정으로 교회가 살아납니다. 목회자가 살아야한다는 것은 목회자의 지위와 역할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목회자가 철저히 낮아져야 합니다. 지위가 낮아지고 목소리가 낮아지고 개인적인 주장이 낮아져야 합니다.
목회자는 지금처럼 신자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들것이 아니고 오히려 신자들을 섬겨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신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신자들에게 교회조직과 교회에서 설정한 봉사와 목표를 요구할 게 아니라 목회자 스스로 봉사꺼리를 만들어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목회일이 직업이 아니라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시간을 내서 목회일을 섬기는 봉사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판관도 아니요 변호사도 아닙니다. 목회자는 섬기는 법을 몸으로 실천하는 자들입니다.
저는 교회와 목회자의 역할을 부정하거나 매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신앙이라는 것이 초기 기독교의 본질적이고 순수한 신앙의 모습을 버리고, 교회와 목회자의 성장주의에 맞게 채색되고 성형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할 따름입니다. 지금 주일을 거론한 것은 그런 교리를 내세워 신자들을 각각 개별교회의 울타리에 가둬두려는 의도가 아닌지 걱정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도처에 서있는 거대한 교회들을 허물고 우리 마음속에 진정한 교회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둥으로 삼고 우리이웃에게 좌우로 사랑의 손을 내밀 때 바로 그 마음안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바로 십자가의 형상입니다. 신앙은 이 세상 교회안에서의 자유 이상의 대자유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인간의 영혼에게 대자유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아멘.
Binnamoo

